내 자신의 신앙의 밭(막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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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도 놀라운 일 [3](렘5: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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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2018 -


(렘5:30,31)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3]>

저는 지난 2주 동안 예레미아 선지자가 살았던 당시에 보았던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가 언급하였던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은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했던 것이었으며 또한 제사장들이 자기 권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린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계속하여 예레미아 선지자가 보았던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에 대한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설교를 합니다. 예레미아 선지자 시대와 오늘의 시대를 살펴보면서 여러분들이 가져야 신앙적인 자세와 사명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은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거짓된 예언과 제사장들의 타락한 것을 지적하거나 고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것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거짓말이 통하고 부패한 재판관들이 많은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당시의 유다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 사회였습니다. 사회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들이었습니다. 사회의 모든 직분을 가진 자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야만 하는 직분을 수행하지 않았고 부패하였으며 하나님 앞에 죄악된 생활로 타락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부패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회의 부패는 그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패한 사회는 결국에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참 선지자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참 선지자를 핍박했습니다. 백성들은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를 거부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회나 백성들이 죄악으로 타락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부패한 삶이 아닌 성결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그런데 예레미아 선지자 당시 사회의 지도자들과 종교적 지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참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거짓된 선지자들의 왜곡된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고 부당한 재판을 하는 재판관들을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유다의 모습을 살펴볼 때 사회가 악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와 종교가 타락하면 그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3주 전, 한국의 한 시사 프로그램은 한 여자 목회자에 의해 교인 450명이 한국에서 피지로 이주한 실제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여자 목사는 소위 타작 마당이라는 단어를 자기만이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 타작마당이란 무엇입니까? 타작 마당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타작 마당은 제단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타작마당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해 바람이 부는 높은 곳에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또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 제단을 쌓았던 곳이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창22:9-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또한 이 모리아 산은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으며, 나중에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을 지은 곳이었습니다.
대하3: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예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이처럼, 타작 마당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이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둘째, 타작마당은 고통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타작 마당이 고통의 장소라는 것은 추수하는 곡식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작마당은 익은 곡식을 가져와 그 곡식의 단을 두드려서 그 껍질이 벗기는 곳입니다. 타작을 할 때 흙이 생명은 아니지만 알곡과 껍질을 벗기기 위한 작업으로 땅도 고통을 받으며, 분리되기 위해 타작하는 곡식에게도 고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타작이 땅과 곡식에 가해져야만 알곡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타작을 하는 사람도 땀을 흘리며 일하며 고통을 당합니다. 벗겨진 껍질이 바람에 날려 타작하는 사람의 눈과 코 그리고 속옷에까지 들어가면 그 고통은 아주 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타작마당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셋째, 타작 마당은 심판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마3: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
타작 마당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것처럼 참 믿음의 사람들과 불신자들을 구별하는 심판의 장소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같은 밭에서 자랐지만 알곡에는 열매가 있고 쭉정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가 있는 알곡은 생명, 곧 구원을 상징하고, 열매가 없는 쭉정이는 심판, 곧 멸망을 상징합니다.
계14:14-16-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金) 면류관(冕旒冠)이 있고 그 손에는 이(利)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天使)가 성전(聖殿)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向)하여 큰 음성(音聲)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穀食)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穀食)이 거두어지니라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예수님께서 알곡을 추수하신 타작 마당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타작 마당은 제단의 장소와 고통의 장소와 심판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피지로 이주한 교회의 교인들은 오직 이 여자 목사만이 타작 마당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여자 목사는 타작 마당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자식 서로를 때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피지로 이주한 교인들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귀속하도록 서류를 조작했습니다.
결국 그 목사의 실체를 알게 된 일부 교인들은 그 여자 목사를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한 방송사가 이러한 사실을 방송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시청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주의 성도 여러분!
목회자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제사장과 똑같은 직분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일컫기를 '만인 대제사장직'이라고 부릅니다.
목회자는 교인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 교단의 총회장 목회자는 높고 낮은 지위를 구별하는 계급이나 지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섬기러 오셔서 섬김을 모범을 보여주셨듯이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는 직분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기는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자신의 지위가 높아진다고 하여도, 그 사람은 여전히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낮아지고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데에 그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교인들이 목회자를 잘 대접해 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잘못된 목회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거나 따라서는 안됩니다.
교인들의 가정을 망가지게 한 그 여자 목사는 아직도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아직도 그 여자를 참된 선지자와 제사장처럼 떠받드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합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것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와 사회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본래, 교회는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를 위한 소금과 빛으로써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대형 교회의 목사의 세습 승계 문제로 인해, 사회가 교회에 대해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것은 교회가 타락하고 있는 징조 가운데 하나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목사는 제사장과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구약의 제사장 직과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 직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담임 목사의 직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이 세습 문제로 인해 사회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단지 그 한 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대부분의 대형 교회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세습을 했으며, 교회의 세습은 여전히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되어질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정당한 것이라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인 인식으로 정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세습을 방지하기 위한 관심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잘못된 것을 지적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가 교회의 잘못된 일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교인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 안에 발생하는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음에도 자기의 교회 일에 외부인들이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교회의 문제는 오직 교회와 관계된 사람들만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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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은 교회의 모든 일이 교인 전체가 다 알고있는 일이라면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의 정보는 관계된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로인한 폐단이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교회의 모든 일이 교인 전체가 다 알고있는 일이라면 수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의 정보는 관계된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 오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투명하고 깨끗하게 수행되어야 합니다. 모든 교인들에게 공개되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업무는 목회자나 당회만이 점유해서는 안되고 교회가 정한 내규나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인들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져야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성경적인 것과 비 성경적인 것을 구별할 수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야 합니다. 성경적이라는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주의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가 예레미아 시대에 근거하여 하고 있지만,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타락은 예레미아 선지자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미3:11-그 두령은 뇌물(賂物)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祭司長)은 삯을 위하여 교훈(敎訓)하며 그 선지자(先知者)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災殃)이 우리에게 임(臨)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예레미아 이전 부터 계속된 죄악된 상황이 예레미아 시대에 와서 더욱 더 심해졌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죄는 점점 심해져 선지자나 제사장과 같은 어떤 특정한 지위의 사람들만이 지은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 전체가 범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남아있는 유일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안다고 거짓된 예언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된 예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계속하여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예수의 재림에 대한 가장 정확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마24:36-“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은 재림의 날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부 하나님만이 그 재림의 날을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말세에 일어나는 징조를 통해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그러한 행태는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 말에 유혹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자세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3주 동안, 우리는 예레미아 선지자가 경험하였던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을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 시대에 있었던 기괴하고도 놀라운 일은 오늘날 우리 시대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거짓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을 남용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가르침과 행동을 분별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성경적인 신앙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섬기는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서로를 섬기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군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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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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